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여, 내게 돈을 주지 마십시오' 했습니다. 내가 돈을 번다면 어느누구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벌 수 있습니다. 돈도 필요하지만 돈을 정복하는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서 `제발 이것도 그와 같이 써 주십시오'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통일식구들은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훌륭한 것입니다.
지방에 순회 나가 보면 우리 식구들의 생활이 비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디 가나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입을 것 입지 못하고 고생하는 식구들이 있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구들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선생님입니다. 뼈가 울 정도로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있는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세상의 원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적인 인격에서 그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주고 싶어야 합니다. 주고 싶어 애달파하면 아낙네들이나 아저씨들은 반응하지 않더라도 필시 반응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나니 그들이 누구냐? 어린이들입니다. 천륜을 따라 순진하게 자라는 어린이들은 필시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면서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하고, 남과 같이 입히지 못하고, 남과 같이 편안한 자리에 눕히지 못했습니다. 모두 내 책임입니다. 그러나 책임질래야 책임질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한 사람한 사람을 붙들고 위로해 주고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연단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십자가 도상을 향하여 가려는 예수님 앞에 베드로가 나타나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할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원수와 같이 대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자기와 뜻을 염려하는 베드로에게 준 최후의 선물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오늘 이와 같은 자리에서도 천추에 남을 수 있는 제자로 만들려 하고있고, 십자가를 넘어 만민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인격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여기에서 쓰러지고 여기에서 후퇴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제자입니까? 역사를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예수님은 가슴이 떨리고 신경이 폭발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그 길을 가면서 입을 열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고 가시는 예수님의 입에서 `사탄아!' 하는 말이 웬말입니까? 그것은 그를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계 만민을 위하고, 후손들을 위하고 천륜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는데, 그가 주기 위하여 가는 스승의 길을 막는 입장에 섰으니 사탄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삼천리 반도 사방팔방에는 우리의 땀방울이 젖어 있고, 우리의 눈물이 젖어 있습니다. 삼천리 반도에서 하늘의 사무친 원한이 쌓여 있습니다. `아! 너 산아, 그리고 물아, 우리의 한을 풀어다오. 만 겨례에게 주고 싶은 이 마음을 알아 어서 속히 자유스런 환경에서 줄 수 있게 하여 다오'라고 하는 사람, 만민이 그 앞에 다 머리를 숙이고 숭고한 그의 피값을 찬양하고, 숭고한 그의 참뜻을 찬양하고, 숭고한 그의 심정을 찬양하는 사람, 받기에 황공하여 그 앞에 만민이 머리를 들 수 없어하는 인격자가 나오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여 `야! 쉬어라!'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그 마음을 누르고 더욱더 채찍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통일교회의 위치요, 현재 우리가 재결의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굶으며 살아도 나보다 더 굶는 사람이 삼천만 민족 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죽지 않는 한 혀를 깨물면서 기도하고, 그들의 서글픔을 하늘 앞에 호소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기가 힘들다고 쓰러져 낙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마지막까지 선의 길을 찾아가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