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노정을 거쳐온 인류역사
그러면 아담 해와 둘이 맨 처음 타락한 것만 해도 분해 죽겠는데, 둘이 또 붙어 사는 것을 보았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했어요? 좋아했겠어요? '그래! 살아라, 살아라!' 그랬겠어요? 혀를 차고 저주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창조이상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패를 내버릴 수 없고, 이것을 참으려니…. 이 자리에 서야 할 하나님인데, 사탄이가 머리가 되었으니 할 수 없이 돌아와서 이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동네에 처녀가 있어서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길러서 며느리로 삼으려고 했는데, 동네의 도적놈이 가서 붙어 가지고 아들딸을 다 낳아 버렸다 이거예요.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나 그런 아들딸은 필요 없다. '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영원성을 중심삼고 지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것을 다시 찾아 수리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입니다. 돌아간다구요. 복귀섭리를 하려니까 다시 수리할 수밖에 없다구요. 병이 났으면 병원에서 전부 처방을 해서 치료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섭리는 병원에서 병을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꾸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아벨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마음대로 주관하고 가인 아벨을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었던 하나님에게는 해와를 빼앗기고 직계 장자권을 다 사탄에게 빼앗겼으니 차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래는 아담의 주인이요,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탄은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원리적으로 볼 때, 복귀원리로 볼 때 차자인 아벨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을 찾아 가지고 가인을 굴복시키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걸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힘만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노정에 역설적인 노정이 여기서 생겨난 것입니다. 사랑의 역설적인 노정, 생활의 역설적인 노정…. 전부가 반대하니 180도의 역설적인 노정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죽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되고? 「살고…. 」 살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구요? 「죽는다. 」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런 역설적 논리가 왜 나왔느냐 이거예요. 거꾸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너희 에미나 애비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했고, 나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이기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탕감법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부모 될 수 있는 예수가 못 지는 것입니다. 자식이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이 책임을 못 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부모보다, 아들딸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더라도 나중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십자가는 탕감법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180도 달라져야 돼요. 사탄이 저 꼭대기를 쥐었으니 180도 반대는 밑창 아니예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밑창을 쥐고 여기서 복귀역사를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형제의 싸움도 청산을 못 지었어요, 몰랐으니까. 형제의 싸움입니다.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핏줄이 엇갈렸기 때문에 가인 아벨이 싸워 가지고 핏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