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들딸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노력
오늘 땅 위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생활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서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생활권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은 소망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과는 통할래야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이 서러움입니다. 이것을 누가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내적인 기준을 가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안타까움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인간끼리 서로 보고 듣고 자기의 심정을 나타낼 수 있으나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은 6000년 싸움의 역사를 경과해 오셨지만, 어느 민족에게도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6000년을 경과해 왔지만 아직까지 하늘과 나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연은 세워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고 예수님까지 보내시면서 섭리해 오셨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참아들딸을 찾으려고 하셨던 하나님의 수고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상의 중심으로서 이상의 생활이념을 성취시켜야 할 입장에서 계시지만 타락권내에 있는 인간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선지 선열들을 보내시어 섭리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늘의 어려움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전인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하려고 오시는 하나님의 대신자를 구주로 모실 수 있는 그 하나의 기준이 이 땅 위에 세워지기를 하나님도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들이 본연의 인륜의 기준과 하늘이 요구하시는 천륜의 기준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경배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찾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마음속에 간직한 것, 예수님이 서러워하신 것은 무엇이었던고.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은 부모가 없어서, 혹은 부부나 나라가 없어서 서러워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서러워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서러움을 해원해 드리지 못하고, 또 참부모를 중심으로 참된 하늘나라를 세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수시로 변하는 입장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천륜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애쓰셨음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님이 제시하신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사시면서 불변한 원칙의 중심을 세우는 사명을 띠고 오셨지만,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잃으셨기 때문에 돌아가셔서 이 일을 성취시켜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영과 육이 합한 세계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이셨는데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영적으로 인간들을 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서러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섭리의 완성이 아니므로 다시 이 땅에 강림하셔야 할 조건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느낀 또 다른 서러움이 무엇이었던가. 만일 인간들이 타락하지만 않았다면 마음 몸으로 친히 선한 부모를 모시고 살수 있었을 텐데 타락함으로 인하여 40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참부모를 모시고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참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아버지의 입장에 서셨던 예수님이란 것을 당시의 인간들이 몰라보았던 것입니다.
오신 예수님을 몰라주는 것이 하나님의 서러움이요, 자녀의 입장인 인류와 부자의 인연을 갖지 못하는 것이 하늘의 애달픔이요 서러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