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요건들을 사랑으로 극복하신 예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4권 PDF전문보기

불신의 요건들을 사랑으로 극복하신 예수

예수님이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민족의 반대를 받았고 교단의 반대를 받았으며, 더 나아가서 자기 친척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까지 저버림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예수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에게 '당신이 어떻게 내 엄마 아빠요? 하는 것을 볼 때에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이렇게 되면 정성들여 키운 모든 과거지사가 전부 다 기쁨의 요소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화의 요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너 때문에 내가 밤잠을 안 자고 너를 이렇게 키웠는데…'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자식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스러운 자리이며 과거를 전부 들추어 가지고 저주할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불신이라는 것은 갑절로 망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견디고 희생하며 온유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사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만일 아무리 수십 년을 잘했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한다면, 그 한마디는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그 못은 바늘을 꽂아 놓는 것보다도 몇백 배 몇천 배 더 아픈 것입니다. 그 한마디로 말미 암아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불평불만은 절대 불효의 요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신반의도 그렇고, 반항하는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볼 때에 예수님이 불평불만할 수 있었던 입장인가, 아닌가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시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보낸 아들입니다. 그런 예수님입니다. 그렇지요? '네가 가거든 마리아에서부터 요셉 가정이 일치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어 너를 군왕으로 모셔 줄 것이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또 '너는 세상에 가게 되면 이런 책임을 하고 이런 사명을 해야 된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겠어요, 안 가르쳐 주었겠어요? 그런 약속을 받았겠어요, 안 받았겠어요?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살인 강도, 반란패가 되어 있고 국가의 주권을 전복시키려는 반동분자로 몰렸습니다. 또, 교회는 예수님 편이 된다고 하였는데 원수가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충성된 백성이 된다고 하였는데 원수의 백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제대로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전부 다 맞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도 안 맞고, 나라에서도 안 맞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참아라'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기당한 것 같아요, 안 당한 것 같아요? 속은 것같아요, 안속은것 같아요? 약속대로한것 같아요, 안한것 같아요? 전부 다 틀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만이 꽉 찼겠어요, 안 찼겠어요? 불만이 꽉 찰 수 있는 것입니다. 불만이 꽉 차면 불평이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불평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평하면 반신반의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믿겠어요, 못 믿겠어요? 못 믿으니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야. 다 요사스러운 것이다' 하고 반항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신 것입니다.

선한 일은 끝까지 선한 일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왔다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교회를 대표해서 왔다는 것은 선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사가랴 가정, 즉 세례 요한을 중심한 가정의 일파를 중심삼고 요셉 가정은 사랑을 맺었습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그들이 충신이 된다고 했으니 그들은 선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선한 자리에서 반대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속한 자리도 틀림없고, 자기 자신도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된 것은 누구 때문이냐? 처음에는 사탄 때문이요. 그 다음은 사탄세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지한 백성들, 무지한 교인들이 꾀임에 넘어가서 그렇게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가슴에 남는 것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 아버지밖에 없다. 내가 이제 여기에서 죽더라도 나는 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내 죽음을 알아줄 것이다. 내가 최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알아주는 선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줄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내 뜻은 당신과 약속한 뜻이었고 내가 죽는 것은 또다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사랑의 섭리이오니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불평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보시오' 라고 했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극복하는 자리, 참고 견디는 자리에서 감사 찬송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누구한테 바쳤어요?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주기는 미안하니까 '내 죽음을 아버지 앞에 드리기는 미안합니다. 아버지께서 죽으라고 하는 자리에서 죽고 또 죽어도 또 죽어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줄 아옵니다. 이 몸을 당신 앞에 바치지 못하오니 원수인 인류에게 남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류에게 그런 심정을 넘겨 주고 죽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아는 하나님께서도 통곡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은 죽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부활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참된 생명은 죽고나서 사탄세계에 참소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편들 수있는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으로 인해 하늘나라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