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통해서만 절대적 주체 앞에 상대권을 찾을 수 있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48권 PDF전문보기

양심을 통해서만 절대적 주체 앞에 상대권을 찾을 수 있어

그러면 여러분의 양심이 곧은 것하고, 여러분 부모님의 양심이 곧은 것하고 다르냐 이거예요. 또, 천년 전 만년 전의 조상들의 양심이 곧은 것하고 이제부터 천년 만년 후에 태어날 후손의 양심이 곧은 것하고 다르냐 이거예요. 달라서는 안 됩니다.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계적 기준에 있어서는 양심적 기준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예요. 양심의 기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상대 여건이 넓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개인을 절대시하지만, 그 자체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은 세계적이요, 우주적이라는 것입니다. 욕심, 욕망은 크다는 거예요.

그것이 작은 개인으로부터 점점점 올라가서 커 가지고 높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인 것이 되게 되면 세계적 기준에 상응될 수 있는 부체(副體), 이것이 백만하면 백만한 기준의 넓이가 되어서 구형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기 활동 반경과 자기 존재의 영향권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커지면 어떻게 되느냐? 우주의 횡적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높이가 높아지기 때문에 그 우주의 중심된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 앞에 가까이 설 수 있는 상대자를 추구해서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움직인다는 거예요.

오늘날 정치하는 사람들이 왜 부패하느냐? 이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대통령은 국민 앞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된다는 원리 원칙이 딱 나와 있다는 거예요. 횡적인 면에 있어서 대통령과 우리는 다름이 없지만 종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는 부동의 자세, 한 자리에 서 있어야 됩니다. 죽을 때에도 그것을 위해 죽어야 되고 사는 것도 그것을 위해 살아야 된다구요. 자기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종적인 중심이 이동하면 전부가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오늘날 이 세계, 인류역사 도상에 있어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일이.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근본 자체, 몸을 망쳐버렸고 마음의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전부 다 미루어 보게 될 때, 오늘날 인간세계는 불안한 세계요, 파탄 일로의 세계요, 절망 일로에 서 있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 여건으로 연결된 세계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왜 그러냐? 종횡의 위치 상실, 종횡의 위치가 엇갈려 가지고 맞부딪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게 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타락 때문이라구요, 타락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명' 하면 그 생명의 종적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둘이 아니예요.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데 있어서는 종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맺고 있습니다. 생명의 종적인 기준의 연결도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을 절대시하지요? 왜 절대시하느냐? 절대자의 생명과 상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내 생명을 절대시하고 싶은 거예요. 이런 것은 이론적으로 다 정리해 놓아야 되는 거예요.

행복이란 도대체 뭐냐 이거예요. 행복이란 무엇이냐? 과거의 행복과 현재의 행복이 다르겠느냐 이거예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이라는 것은 같다는 겁니다. 같아야 된다는 거예요. 천년 전에, 만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느끼던 행복이나, 이제부터 몇만 년 후에 우리 자손들이 느낄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 행복의 종적 기준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갑이라는 사람 마음대로 행복의 종적 기준을 만들어 놓을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왜? 피조물은 제2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제1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내 살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내 눈에다 눈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쭉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이제 이 혼란한 세상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되느냐? 민주주의가 종적 기준과 연결될 수 있느냐? 민주주의는 왔다갔다합니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대통령도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백성도 왔다갔다, 왔다갔다…. 안 그래요? 여당 야당이 전부 다 싸우는 것을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이 아시아 대회가 끝나면 극한 투쟁이 벌어진다고 나한테 연락을 한 사람들이 있지만,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빼앗아 가지고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가져가는 것은 좋은데 '정당이 천리와 부합할 수 있는 종적 기준의 자리에 설 수 있느냐'고 전대통령에게 묻게 된다면 '자신 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하늘을 몰라요. 김영삼, 김대중에게 '그럴 수 있느냐? ' 하고 물으면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겠어요? 집어치우라는 겁니다. 미국 대통령도 모르고 있고, 일본의 나까소네 수상도 모르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문의하고 있는 거예요. 어떤 것이 종적인지 어떤 것이 횡적인지도 모르는 …. 뭐라고 할까요? 이 무식한 사람들! 무용지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사람들!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가는 거예요.

나에게 마음이 절대 필요하냐, 임시로 필요하냐? 마음이 절대로 필요해요? 「예」 그러면 사람은 몸뚱이의 말을 들어야 돼요, 마음의 말을 들어야 돼요? 어떤 거예요? 「마음의 말입니다」 그것이 상대적이예요, 절대적이예요? 「절대적」 절대적이라구요. 절대적이예요. 양심적인 사람이 되기를 왜 강요하느냐? 그것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적인 것과 연결을 지을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 대한민국의 전통사상을 존중시해야 되느냐? 그것은 종적인 사상의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 민족은 그 사상을 주체로 해 가지고 양심적으로 따라가야 됩니다. 그건 왜? 왜 그러냐? 개인은 가정이 필요하고, 가정은 종족이 필요하고, 종족은 민족이 필요한데, 그 양심적 전통역사라는 것에는 하나의 민족적인 주체성을 지니고 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민족도 따라가야 되고, 종족도 따라가야 되고, 가정도, 개인도 따라가야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이론적으로 설정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런 혼란한 세계를 하나님은 '종은 종이고 횡은 횡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