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과 비애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0권 PDF전문보기

슬픔과 고통과 비애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기에는 통일교회는 멕기공장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아직까지 멕기공장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멕기공장을 만들어야 되겠단 말이예요. 그러려면 젊은 녀석 누구누구를 전부 잡아다가…. (녹음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거 나쁜 마음예요, 좋은 마음이예요? 「좋은 마음입니다」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겁니다. 그저 몽땅몽땅 뽑아 가지고 한꺼번에 몽땅 붙여 놓고 싶은 것이 여기 이 사람의 바램입니다.

사람도 선을 지향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하나의 시대적인 입장에 그런 맘을 품거든, 하물며 천지를 사랑하고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창조주의 마음이 그렇지 않겠느냐.

30억이라는 인류가 살고 있습니다. 30억이라는 인류가. 30억이라는 인류가 살고 있어요. 이 30억이라는 인류 가운데서 사망률을 평균 잡자면 백 명 중에 한 사람만 죽는 다 해도 일년에 죽어 나가자빠지는 게 얼마예요? 3천만입니다. 원수의 사탄세계에서 지옥을 향하여 급행열차를 매 10초에 한 대 꼴로 달리는 거예요. 무지몽매한 하나님이라면 모르거니와 심정으로 이끌어 이것을 살려 주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하나님으로서 그걸 바라볼 때에 괴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세상 부모도 자식이 하나 죽어 가게 되면 그 자식이 살인 강도요, 이 나라에서의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자라도 그가 최후로 사라지는 교수대를 향하여 걸어 나가게 될 때, `하나님, 능력이 있사오면 저 아들을 살려주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부모의 마음이거늘, 이런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음의 원천되는 것이 창조주라 할진대 그 원천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이 1년에 3천만이라 수요가 지옥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는 것을 볼 때에 `어, 너 잘간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이겠느냐 이거예요. 어떻겠어요? 한갓 몇 척밖에 되지 않는 사람도 그런 욕망에 있어서 자신의 것을 좋은 것으로 인정할진대 하늘이 이런 처참한 환경을 바라보고….

우리 한국을 두고 보더라도 3천만 가운데 3십만의 사람이 지옥행급행열차를 타고 가고 있고, 또 연속적인 운행을 하고 있는 마당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이런 인간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이 이런 경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밥 먹는 이 시간에도 죽음의 고함성을 치면서 죽음의 지옥을 향해 달려드는 이 민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가 많다는 거예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못난 사람들이 아니예요. 지식계급의 사람들, 이 나라를 지배하고 혹은 세계를 움직여 나온 자칭 똑똑한 인텔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억울하고 억울하구나!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걸 생각할 때 통곡할 줄 아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들이 믿고 우리들이 만나려 하는 그 아버지는 슬픔의 아버지입니다. 천상, 지상 어떠한 존재물을 대하더라도 고생을 하고 고통을 당했다는 어떠한 왕자가 있다 할지라도 그 고통이라는 명사는 인간 앞에 해당되지 않아요. 내가 아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더라 이거예요.

고생이라면 하나님 이상 고생한 사람이 없고, 고통이라는 명사를 가질자는 하나님밖에 없고, 슬픔이라는 명사를 가질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거예요. 억울하고 분하고 세상만사 곡절의 모든 비운의 실체로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오늘 인간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 억울하고 분한 일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 분인 것을 알고 보니 매를 맞고 엎드려 엉엉 울면서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할 수 있고, 쫓김을 받아 있을 곳이 없어 바위틈에 가 가지고 찬 바람을 맞는 그 자리에 들어가서도 `나는 괜찮습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누구냐? 그분은 누구냐? 그분은 본래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본래의 우리 아버지가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던고? 본래의 우리 아버지인데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던고?

여러분, 이 땅 위에 그런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입장에 서야 하나님의 실체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다는 사정을 말할 수 있고,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한 자리에 있으니 죽더라도 한이 없다고 나는 말하고 싶어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매를 맞아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그 아버지가 보고 싶었고, `내 아버지, 내가 죽습니다' 하는 죽는 자리에서도 `당신을 위하고 당신의 서러움의 핏자국을 메울 수 없는 불효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안타깝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도 이런 심정을 지녔기 때문에, 아들딸을 찾고 있는 아버지의 버릴 수 없는 소망은 자기가 죽어가더라도 남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을 박는 무리를 보고도 `피야 떨어져라. 몸이야 찢어져라!'했다는 거예요. `슬픈 고통의 실체는 당신이였사오니 내 아무리 슬프고 내 아무리 곡절이 많다 하더라도 이것은 한계적인 고통이로되, 죽음의 고개는 몇 분 몇 초 안 되는 한계적인 고통이로되, 당신은 내가 죽어간 후에도 고통의 생활을 면치 못하는 억울한 당신인 것을 나는 압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향하여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흐르는 눈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민족을 향하여 아직까지 피와 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직까지는 죽음의 비통한 길을 걸어야 하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 주는 무리가 되자는 것이 통일교회 패들입니다. 내게 재산이 없고 내게 자랑할 아무것이 없더라도 불쌍한 아버지의 효자가 되어 보겠다는 이 정성, 이것이 통일교회가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재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 수십 평생 곡절의 길을 갈 적마다 그 아버지는 살아 계시거늘 내가 고통을 받고 있는 여기에 있어서 편될 수 없는 아버지라는 걸 생각할 때에 억울하고 분통했습니다. 그런 곡절의 사정을 지금까지 말 못하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