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겠다는 자리가 완성한 자리
오늘 말하는 새가정은 지금까지 인간세계에서 말하는 새로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를 초월한 자리에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새로운 가정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다시 편성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내는 것입니다. 구세주를 보내 세상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하기 전에 가정을 구해야 됩니다. 세상을 구하기 전에 나라를 구해야 되고, 나라를 구하기 전에 종족을 구해야 되고, 종족을 구하기 전에 가정을 구해야 되고, 가정을 구하기 전에 나를 구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게 필요한 구원은 어떤 것이냐? 나에게, 우리 가정에 구원이 필요한 것은 어떤 자리에 있기 때문이냐? 받기를 원하는 자리에 있으면 구원이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받겠다는 자리입니다. 주겠다고 하는 자리는 완성한 자리입니다. 하나님 대신 제3의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소유권의 확장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받겠다는 데서는 소유권이 축소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겠다고 할 때는 상대권이 확대됨으로 말미암아 자기 소유권의 무대가 확장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 말은 뭐냐? 주위에 있는 가정들이 '저 가정을 본받아야겠다.', '저 가정같이 되면 좋겠다.' 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됩니다. 그 가정은 자기를 위하는 데서는 절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악마의 소행이 자아 자각에서부터 벌어졌습니다. 타락은 어디서부터 벌어졌느냐? 자아 자각에서부터입니다. 자기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제일주의였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싸우게 될 때도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친다구요. 먼저 손대는 사람이 악한 편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손을 대는 가해자는 악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타락이 자아 자각에서 출발했으니 자아를 부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는 자아부정을 가르칩니다. 선한 사람은 져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져주라고 하지요? 져주는 것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맞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천리(天理)를 통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을 합니다. 치고 빼앗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은 치고 빼앗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