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하나님의 대신자인 동시에 내 몸뚱이 앞에는 절대적인 주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54권 PDF전문보기

양심은 하나님의 대신자인 동시에 내 몸뚱이 앞에는 절대적인 주체

그러면 양심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볼 때, 내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먼저 알아야 되겠어요, 내가 먼저 알아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먼저 알면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내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상대자인데, 상대의 자리에 서 있는데 하나님이 먼저 안다면 기분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기분 나쁜 것입니다. 내 것은 내가 먼저 알아야지요. 그거 이론적으로 딱 맞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상적 인격 가치를 부여한, 절대적인 대상의 자격을 부여한 그 자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출발에서부터 상대적 터전을 중심삼고 합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 모든 일을 누구보다 먼저 아는 것은 내 양심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먼저 안다면 하나님이 먼저 아는 몸뚱이가 되면 이것이 속성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상대적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 가운데 인간은 절대적 창조주의 동반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적으로 내가 먼저 알게 되어 있지, 하나님이 먼저 알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상을 지금까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직 관계, 상하관계에 있어서는 상대적이지만 나를 중심삼고 횡적인 기준에서는 그 양심이 상대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신자인 동시에 내 몸뚱이 앞에는 절대적인 주체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이것은 상하 관계, 플러스 마이너스 관계에 있지만 이것이 아담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연결될 때는 마음이 플러스예요. 이 양심은 하나님과 일치되어 있으니만큼 절대적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이 몸뚱이가 하나되었더라면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거예요. 요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부모의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양심에게 부모의 교육이 필요해요? 스승의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결론이 나와요, 절대적이니까. 자기 갈 길이 옳은지 그른지 자기가 다 알게 되어 있다구요. 알고 있는데 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악한 일,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을 할 때는 양심이 '야, 이 녀석아! 몸뚱이가 마음대로 하는데 그게 말이 되는 거야?' 이렇게 경고를 해요, 안 해요?「경고합니다.」양심이 살이 있어요, 죽어 있어요? 살아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을 할 때는 틀림없이 '이놈!' 하고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그 명령이 왜 통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명령을 할 수 있는 주체자인데 왜 그 명령이 통하지 않느냐? 통하지 않게 하는 병폐가 무엇이냐?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는 거예요.

인간들이 지금까지 이러한 병폐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계승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나옴으로 비로소 이런 걸 밝히는 것입니다. 이게 역사적입니다. 이걸 밝히지 않고는 하나님과 인간이 통일될 수 있는 일치점을 구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주체라 하고 인간도 사랑의 주체라고 하면 사랑이 어디서 만나는 거예요? 그 출발점이 어디예요? 하늘과 인간의 사랑이 연합되는 자리가 어디냐는 거예요. 인간이 일생이요, 하늘은 영원이라면 시한적인 존재와 무한적인 존재가 하나되어 가지고 통일될 수 있는 사랑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유한적인 사랑만을 찾으면 무한적인 생명의 기원, 무한적인 생명을 중심한 무한적인 행복의 기본이 되는 사랑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는 상대지만 내게 있어서는 제1 하나님 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못 되었기 때문에 병폐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것이 사실이라 할 때는 이 병폐를 앓는 몸뚱이를 때려잡아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