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 사랑의 절대대상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천일국 주인의 생활

3) 하나님 사랑의 절대대상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

새로운 만물을 지어놓은 그 에덴, 새로운 만물과 더불어 영원복락을 향유해야 할 주인공 아담과 해와, 그 아담과 해와를 세워놓고 새로운 심정적인 이념을 품고 바라보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에게는 어느 한순간 귀하지 않은 때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거동하는 그 순간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순간이요, 말할 수 없이 귀한 인연의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자라나고 있는 아담과 해와는 날이 감에 따라 이지와 지능이 밝아져 하나님의 본성을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는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자격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바라보시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하나님 자신의 움직임이고,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말이 되고, 또한 그들이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이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관계와 인연권 내에 있는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이 심중으로 그리던, 하나님의 전체를 대신한 존재였음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위하여 지으신 만물을 품고 계시는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세워 놓고 어떠한 한날을 고대하고 그리워하셨던가? 여섯째 날까지 만물 지으시기를 다 마치셨으나 아담과 해와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으신 데에는 필시 아담과 해와와 하나님 사이에는 무엇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지어 놓은 상태의 아담과 해와도 아니요,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기간도 아니요, 아담과 해와를 통하여 찾아 이루고자 하시는 한날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한날을 맞이하는 그 순간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며, 아담과 해와도 기뻐할 것이며, 만물도 기뻐할 것이기에 만물도 그날을 고대하고 인간도 그날을 고대하고 하나님도 그날을 고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8-267, 1960.2.7)

우리의 선조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났고, 하나님의 지성지대(至聖至大)하신 사랑의 심정 밑에서 키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라는 모습이 귀엽고 사는 환경이 자유스러웠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허락하여 주신 만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요, 심부름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한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한 창조의 이념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소망의 세계를 세우시고,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아 천하만상이 자유자재로 주관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자 했던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외적인 어떠한 조건이 귀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심혈이 그들에게 침투되어 있고, 당신의 뼈와 살이 잠재해 있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심정의 흐름이 아담과 해와를 향하고 있었던 연고로, 아담과 해와에게 온 천지만물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만물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내려주신 축복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저버려서는 안 될 하나의 원칙을 저버렸으니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반입니다. 심정의 기반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바라볼 적마다 소망의 심정이 불타올랐고, 그들을 볼 적마다 그들이 자아를 완성하여 행복한 생활을 할 것을 생각하시며 행복의 감정이 불타올랐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을 그들 자신이 지은 것처럼 주관하고, 즐거워하며 쓰다듬어 줄 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의 심정은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다 끊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가 저끄러 놓은 죄상 중에서도 용납받지 못할 크나큰 죄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왜? 본래 인간을 영원의 기준인 원리적인 법도에 의하여 지으신 연고로 그 기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저버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으나, 그들을 저버리면 6일간 지으신 전피조세계의 원칙을 저버리는 동시에 영원의 기준까지 저버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되고, 영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실존까지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해와를 다시 한번 구원하는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9-49, 1960.4.10)

사탄은 해와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나아가서는 아담까지 타락시켰습니다. 즉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것을 탕감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유린당해 왔던 것입니다. 여자들이 섭섭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해와를 만들었느냐? 성경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뚱이가 타락해서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들도 몸뚱이를 뭐라고 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합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여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이 된다 하더라도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과 비교하면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들어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은 대관절 무엇이냐? 아담과 해와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주관할 수가 없습니다. 즉 천지를 창조한 기술자와 같은 실력이 없어서는 주관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주관의 능력을 주실 것이냐?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아담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서 아담을 컨트롤해야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몸이 되도록 만든 아담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의 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 즉 몸이 있어야만 보고 듣고 하겠기에 하나님의 실체가 되도록 창조한 존재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실체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체를 쓴 하나님이라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아내를 얻는다니 기가 막힌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과 해와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성품을 그대로 닮아서 한몸을 이루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딸이 아담과 해와의 아들딸이자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통해서 아담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궤도에서 사랑의 인연을 세우지 못한 것이 억천만 대의 한의 역사요, 오늘날 이 비참한 타락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2-279, 1969.5.4)

하나님이 왕이라면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제1대 왕자 왕녀입니다. 하나님의 상대로서, 천주의 모든 것을 상속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제1왕자와 제1왕녀가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해와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왕족심정권(王族心情圈)에 일치하는 생애를 마치고 들어가는 데가 천국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역사 이래 어떤 종교가도, 어떤 사람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금방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런 바보 같은 말은 없습니다. 심정권, 장자권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는 제1대의 장자와 장녀였습니다. 제1대의 참부모요, 지상왕국의 제1대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 왕을 중심삼은 왕족이 지상에 남아 있다면, 지금 이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텐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탄권을 중심삼고 수백 수천의 민족들이 분열되고, 싸움의 와중에서 왕족권을 제압해 온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의 결론입니다. (228-170, 1992.3.27)

무형의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남성격 성품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것이, 하나님의 내적 성품을 보이게 실체로 전개해 상대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담이고, 여성격 성품을, 하나님의 내적인 성품을 실체로 전개해 놓은 것이 해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내성적인 모든 것을 투입하여 실체화시킨 것이 인간의 몸입니다. (143-81, 1986.3.16)

해와 때문에 본래 이상적인 아담과 해와 둘 다 깨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 후아담으로 온 예수 앞에 타락한 해와, 즉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가 될 해와를 복귀시켜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하는 데는 마리아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창조주께서 아담을 중심삼고 해와를 지을 때도 천사장이 협조했기 때문에, 복귀역사 완성을 위해서 후아담을 본따 해와를 지을 때도 천사장이 협조를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와 복귀된 해와가 하나 되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천사와 천사장의 입장인 종들이 아담의 입장인 예수를 중심삼고 해와의 입장인 딸을 창조했다면 그 딸은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딸이 아니겠어요? 마리아와 요셉이 그 하나님의 딸과 예수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주관성 전도 문제는 해와가 저질러 놓은 일이기 때문에 여자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가 천사장도 복귀해 줘야 하고, 아담도 복귀해 줘야 하고, 해와도 타락 전의 해와로 복귀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이 전부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주관성을 전도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장과 아담과 해와 이 셋을 복귀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까지 전부 찾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소원해 나오신 뜻과 인류가 앞으로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기원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인류의 목적점이 되어 왔고 하나님의 목적점이 되어 왔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사랑을 맺고 사랑을 완성하게 되면, 거기에서 완전한 것으로의 출발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관성 전도를 반드시 해야 됩니다. (38-70, 1971.1.1)

만약에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아담과 해와가 이룬 가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임과 동시에 인류 시조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터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통이라든가 낙망이라든가 혹은 탄식하는 것들을 보고 느끼지 아니하고, 기쁨과 행복만을 느끼며 영원을 소망삼고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서 하나님의 주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런 것 전체가 저끄러졌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시 복귀해야 하는데 그것을 결코 그냥 그대로 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창조원칙에 따라서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를 보면 재창조역사를 통해서 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천사장이 있고, 해와가 있고, 아담이 있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四位)의 형태를 갖춘 자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재창조원칙을 통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복귀역사는 남자가 담당해 나왔던 것입니다. (46-196, 1971.8.15)

유대 민족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홀로 국가와 세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는 가족을 떠나야 했고,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구원을 위해 타락하지 않은 형제가 희생해야 했듯이,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한 아담과 해와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제물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그들을 축복해 주시도록 청을 드리고 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과 타락한 아담과 해와 사이에 중보자로 섰던 것입니다. 예수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공식적인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아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52-66, 1971.12.22)

만일 아담과 해와가 성숙하여 완성하였더라면 그들은 부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담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종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해와는 아버지와 딸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아담과 해와가 소망했던 자리는 하나 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도 하나가 되어 아담을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횡적으로는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 셋이 있습니다. 이 셋은 완전히 하나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그들이 만나겠습니까? 저 위에서, 아니면 이 아래에서? 아닙니다. 그들은 횡적으로 함께 만나서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아담과 해와가 횡적으로 하나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완전히 일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그들을 떼어놓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를 얻은 후에야 비로소 사랑의 자리에 대한 욕망이 생겨납니다. 남자와 여자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가 같이 있고 싶어하는 유일한 자리이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해와가 하나가 될 수 없다면, 그들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담과 해와 사이의 수수관계가 소원(疎遠)해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적으로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창조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창조이상,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 해와가 하나님과 일체가 되면, 그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내가 너보다 높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높고 낮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완전한 하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과 해와의 사이 그리고 하나님과 아담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52-261, 1972.1.2)

아담과 해와가 성숙해가지고 성혼식을 했으면 그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직접적인 사랑권 내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심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우리 인간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 됐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몸이자, 인류의 부모이자, 하나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상대가 없이 기뻐한다면 미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상대적 존재입니다.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한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아담과 해와가 한몸이 되어 있으면, 그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태어난 아들딸은 아담과 해와의 아들딸이자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의 혈족으로서 이 땅 위에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세계를 이루었을 것이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그 인연은 끊을 자가 없기 때문에, 그 나라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지상천국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54-64, 1972.3.11)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담이 해와를 사랑하되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것이요, 해와도 아담을 사랑하되 하나님 대신 사랑한다는 관념이 여기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생활은 하나님의 생활을 표시하는 것이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좋아하면 하나님도 내적으로 좋아하고, 아담과 해와가 슬퍼하면 하나님도 내적으로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것이요, 아담의 것이요, 해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5-250, 1977.12.4)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좌익 우익이 없습니다. 통일입니다. 두익사상(頭翼思想)과 하나님주의가 필요없이 그냥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필요없습니다. 아담과 해와에서부터 두익사상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지, 다시 돌아갈 무엇이 없습니다. 모두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늘나라의 왕자 왕녀로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왕손이었지만,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몸입니다. 해와는 하나님의 실체 부인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종적인 아버지가 됩니다. 수직적인 아버지, 종적인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그 두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본연적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했을망정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종적인 부모로서 횡적인 부모를 종적인 사랑의 상대로 지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파트너입니다. 하나님의 상대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라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시작했으니 돌아가면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27-274, 1992.2.14)

아담과 해와가 누구를 중심삼고 결혼생활을 했겠어요? 하나님이 그것을 간섭했겠어요? 아담과 해와가 아들딸을 낳았어요, 안 낳았어요?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 아벨을 낳았는데 하나님이 `얘, 아담과 해와야! 너희들, 같이 살아서 아들딸을 낳아라!` 해서 낳은 것이 가인 아벨이에요, 자기 멋대로 살면서 낳은 것이 가인 아벨이에요? 자기들 멋대로 해서 낳은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인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사탄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234-300, 1992.8.27)

한반도가 아담국가라면 일본은 해와국가입니다. 한국이 왜 아담국가냐? 지리적으로 볼 때, 한반도는 남자의 생식기와 똑같습니다. 로마가 딱 그렇습니다. 지중해는 여자의 음부와 마찬가지이고 이태리는 남자의 생식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둘이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역은 언제나 문화가 떠나지 못합니다. 하나의 문화가 귀착해가지고는 떠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기반 위에 선 것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인 모든 것을 보더라도 로마와 지중해는 남녀가 합한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해서 종합적인 문화시대가 찾아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자리이니 만큼, 그 주변 나라는 같이 타락한 세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아담과 해와, 세 천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세 천사장은 중국과 소련과 미국입니다. 미국은 하늘편적인 천사장이고, 사탄편적인 천사장이 중국과 소련입니다. 대만과 인도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딱 그와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가정을 잃어버린 그때에 아담과 해와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 천사장이 모두 타락했습니다. 그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로마 교황청이 하지 못한 것을 수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이 오시는 주님을 준비하기 위한 뜻을 가졌지만 실패했습니다. (235-81, 1992.8.29)

일본은 사탄편 나라입니다. 아마데라스 오오카미(天照大神:일본에서 섬기는 여성신)의 나라를 하늘나라의 해와로 몽땅 돌려야 됩니다. 차자권을 일본사람 외에 제2세들 앞에 빼앗아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아담과 해와 국가니만큼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이 한일 합병할 때는 총칼을 가지고 하나 만들려고 했지만 문 총재는 자유스런 환경에서 사랑으로 하나 만든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여자는 하나고 남자는 다섯인데, 아담이 눈이 멍청해가지고 여자를 빼앗길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아들딸을 전부 다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가져야 해와를 찾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몽땅 결혼시켰기 때문에 해와는 갈 데가 없습니다. 일본 자체가 국가적으로 이런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대표한 해와국가가 출생해서 아담국가와 하나 되는 날에는 천사장국가인 미국까지 가담해 세 나라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265-177, 1994.11.20)

성약시대(成約時代)라 할 때 성약이라는 것은 아담과 해와를 창조해서 아담과 해와의 가정을 완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약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의 본연적인 기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타락의 혈족,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의 50억 인류와 역사시대에 영계에 간 수많은 선조들까지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역사시대에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 지나가 버리고, 뜻을 이룰 수 있는 성약시대에 미치지 못하는 충성이요 정성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짓고 아담을 따서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져야 할 것은 아담을 다시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어야 하고, 땅은 해와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와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 두 아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찾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씨를 뿌렸기 때문에 그것을 거두어야 합니다. 어머니를 중심삼고 아벨은 오른편이요, 가인은 왼편입니다. 삼각형의 선과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그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해방할 수 있느냐? 개인적으로 가인 아벨을 뿌렸으니,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어머니와 아들딸이 심었으니 이것을 세계적으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44-234, 1993.2.14)

참사랑의 초석을 누가 놓았느냐? 인간이 놓았느냐, 하나님이 놓았느냐 하는 문제의 답은 하나님입니다. 인간이 나기 전에 광물을 짓고 식물을 짓고 곤충을 짓고 전부 다 지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맨 나중에 인간을 지었고, 맨 나중에 지은 것이 해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은 누구와 연결되느냐? 여자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초석을 놓은 목적은 땅 위에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는 횡적인 면에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중심삼고 어디에 가 합하느냐? 남자 여자가 합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오목 볼록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적 존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담의 마음에 성상이 들어가고, 해와의 마음에 형상이 들어가 그들이 결혼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영육 일체와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영육 일체의 남자, 영육 일체의 여자가 하나님과 하나 돼가지고 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은 한날, 한시에 한 쌍으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의 결혼식인 동시에 하나님의 결혼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분합(正分合)입니다. 정(正)에서 갈라진 것이 합(合)하는 데는 혼자 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해와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합하는 것입니다. (269-126, 1995.4.9)

종횡을 중심삼고 운동함으로 말미암아 면적이 생기는데, 이 면적 가운데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안팎으로 동일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류의 조상의 자리에서 첫사랑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적이고 내적인 하나님의 존재와 이 육적인, 일생적인 존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의 핏줄과 몸의 핏줄을 이어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자녀는 하나님과 아담 완성의 모든 기준을 받게 되고, 하나님이 영생하느니만큼 우리 인간도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영생 논리가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형상을, 체의 형상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상을 완성시키는 데 절대 필요한 것이 절대주체 앞에 절대대상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대상적인 존재가 아담과 해와입니다.

여기는 내적인 형상으로 있던 것이 실체로 갈라졌다가 다시 완전한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으로 일체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마음적 실체인 하나님이 여기에 내적으로 들어오고, 몸적인 실체 아담과 해와가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도 아담의 형상을, 아담도 하나님의 내적인 형상을 닮아가지고 지상에 정착하는 것이 가정의 기반입니다. 이것 모르면 안 됩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입니다. (294-245, 199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