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자세를 정비하여 전체를 책임져야 할 우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6권 PDF전문보기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자세를 정비하여 전체를 책임져야 할 우리

이러한 목적을 지니고 한국을 찾아드는 나 자신은 어떠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면, 내 자신이 그런 입장에 서서 이러한 제단을 마련하고 제물을 가꾸어 가지고 드릴 수 있는 준비자로서의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자체 반성을 해야 할 기간도 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선생님, 선생님이 지닌 그 모든 것은 여러분들이 지닌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금번 조선호텔에서의 뱅퀴잇(banquet)을 중심삼고 한국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이 민족이 새로이 하늘 앞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더냐. 하늘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 무엇인가 모르게 자기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기의 내적인 면을 깨우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가다듬을 수 있는 외적인 환경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 민족이 제사를 지내는 한때를 맞기 위한 제객(祭客)들로서의 준비자세를 갖추는 모습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그러한 외적인 제객들인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차원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스스로 갖춘다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의 때가 온다고 매양 기뻐만 하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들에 앞서서 우리 자체가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자세를 정비해 놓아 가지고 그야말로 선생님과 하나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보게 될 때 '내가 원하던 제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바라는 제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당신이 바라던 제물이 이것이며 내가 드리려던 제물도 이것이니 이 민족을 대신해 가지고 드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 민족이 스스로 반성을 하고 하늘 앞에 스스로 자기의 태도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이런 하나의 분위기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민족이 새로운 결합이 가능한 한 차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소원하던 것은 한국이 우리 뜻을 받아들여 줬으면, 이 민족이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왔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핍박 도상에 있어서의 우리의 소원이었고 희망이었다면, 그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때가 왔다 할 때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때는 소망의 때가 아닌 것입니다. 바라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바라는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왔거든 그 다음부터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해야 됩니다. 그 목적이 성사될 수 있는, 당장 현실적인 생활터전에 나타날 수 있는 그 목적을 바라보던 자체로서 가야 할 길은 차원이 다른 길로서 새로이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완결지어 놓고 새로운 목적의 세계로 향진(向進)할 수 있는 길을 가지 못하고 옛날 그대로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날에는, 하나님이 원하고 혹은 선생님이 원하는 이 민족에 대한 통일교회의 기대가 달성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이러한 시점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 변화와 더불어 내적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렇게나 취급받을 때는 아무렇게나 행동하더라도 그것으로 될 수 있었지만, 귀중하게 전체가 희망을 가지고 '이것을 책임져 다오. 하늘을 책임지고 나라의 뜻을 책임져야 한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옛날과는 다른 것입니다. 입장이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옛날에 하던 행동은 전체 앞에 영향을 끼칠 수도 없고 책임을 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가는 길이 영향을 끼치고 책임져야 할 길이라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적당히 환경을 피해 가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피해 가는 때가 아니라 계획대로 밟아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변명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대로 그 자체가 하나의 희망의 표준이 돼야 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중심을 대신한 주체로서 안팎을 갖춘 그런 자세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 생활에 있어서, 가정생활에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에서도 그렇고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생활터전에서 생활을 하는 모든 언행심사(言行心事)가 어떠한 새로운 목적관에 일치된 표현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자각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