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았던 미국에서의 싸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14권 PDF전문보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았던 미국에서의 싸움

이래 가지고 70년대에 들어와 가지고…. 선생님은 미국에 가기 전인 1972년도까지는 한국에서 공식 집회를 한번도 한 일이 없습니다. 왜 그랬느냐? 선생님에게는 국가적 기준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무대에서 공식적인 출발을 해야 하는 천적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 출발이 가능한 국가적 기반을 형성한 기반 위에서 세계적 기반이 연결되기 때문에 그전에는 한국에서 공식 집회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1971년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1972년도부터 비로소 미국 조야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선포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1973년도에 영주권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영주권을 받아 가지고 미국에 대한 본격적인 작전을 전개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3년 반 동안에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과 세계에 문제를 제시해야 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이미 반대를 받고 있었으므로 제일 빠른 길은, 빠른 시일 내에 반대를 받아 가지고 세계의 고개를 넘으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작전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전에 어떤 집회에서 말했지만, 미국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뭐냐? 자기들 나라는 세계 주도국으로서 아시아나 그 어떤 유색인종들은 자기들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겁니다. 자기들이 명령하면 그 명령을 따라야 되고, 자기들이 지도하는 그 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이니 한국 사람들은 이건 뭐 쓰레기통의 장미와 같이 생각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실정에서 한국 사람인 내가 가서 들이쳤던 것입니다. 머리를 들이치고, 배통을 들이쳤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의존하고 전진하는 내 앞에서 국무성도 그야말로 위협을 느껴서 공산당과 접촉해서 그들의 사주를 받는 프레이저를 세워 가지고 본격적으로 '코리아 게이트'와 더불어 통일교회를 근절하기 위한 싸움을 전개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하늘을 대표해 가지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지지해 줄 단 하나의 사람이 없는 그러한 환경에서 하늘을 믿고 거대한 미국을 공격해 가지고 결국은 프레이저를 꺾었다 이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미국에 있어서 어떠한 새로운 붐이 일어났느냐 하면, 지금까지의 자유주의적인 정치체제가 새로운 신보수적인 정치체제로 바꿔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계기가 없었더라면 레이건 행정부가 탄생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는 데 우리 통일교회가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미국 조야도 모르고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이것이 불원한 장래에 미국 역사 가운데 남아질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1977년에 들어와서, 1976년 워싱턴 대회를 중심삼고 1977년에 들어와 가지고 천승일을 책정해 가지고 3차 7년노정의 21년노정을 결국 17년노정으로 끝맺었다 이거예요. 이것은 놀라운 역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의 60세 환갑을 중심삼고 1980년 2월 21일을 기해 제3차 7년노정을 승리적으로 완결을 짓고 새로운 제2회 3차 7년노정의 출발을 선언했던 것입니다.